서울아리랑상
Seoul Arirang Festival Awards

제4회 서울아리랑상 시상식
The 4th Seoul Arirang Award

일시 Date
2018. 10. 12(금) 7pm~
장소 Place
광화문광장 축제무대 Festival Main Stage

제4회 서울아리랑상 수상자는 이시다 슈이치(石田修一) 일본 카시와시립고등학교 취주악부 음악총감독으로, 자신이 이끄는 카시와시립고등학교 취주악부의 ‘아리랑’ 연주를 통해 아리랑의 창조적 개방과 음악적 가치 제고 및 세계화에 기여한 공로를 높이 평가해 선정하였습니다. 현재 카이치국제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기도 한 그는 2001년 한국 방문길에 우연히 들은 ‘아리랑’에 반해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아리랑’을 배워 취주악부 단원들에게 아리랑을 가르치는 한편, 장구 · 부채춤 · 상모춤 등 다양한 국악퍼포먼스를 가미한 새로운 아리랑 공연을 선보였습니다. 이 활동을 통해 일본 및 세계 취주악대회에서 여러 차례 1등을 수상하며 그 실력을 인정받았으며, 일본 전역 순회공연은 물론 세계 각국에서 초청받아 활발하게 공연을 펼치고 있습니다.

The 4th Seoul Arirang Award is for Ishida Shuichi, the musical director of Kashiwa Municipal Kashiwa Senior High School Marching Band in Japan, who contributed to the globalization and creative spread of Arirang. Now he is a professor at Kaichi International University. In 2001, he fell into Arirang while visiting Korea so he learned Arirang directly from Korea to Japan. Then he taught his Marching Band the new Arirang that he made with various Korean traditional performances like Janggu · Fan Dance · Sangmo dance etc. As a result, he was recognized for winning Japan and the world championships. Also, he is actively performing in Japan and all around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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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서울아리랑상 수상자 : 이시다 슈이치 (카시와시립고등학교 취주악부 음악총감독)
Winner of The 4th Seoul Ariran Award : Ishida Shuichi
(Musical director of Kashiwa Municipal Kashiwa Senior High School Marching Band)

<취주악 카시와 아리랑>과 이시다 슈이치<Kashiwa Band Arirang> and Ishida Shuichi

(사)한겨레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 김연갑

<취주악 카시와 아리랑> <Kashiwa Band Arirang>

현 시점의 ‘아리랑’은 노래, 민요 아리랑을 넘어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보게 할 만큼 모든 장르에 확산되어 있습니다. 향수(享受)와 전승(傳乘) 공동체 역시 한반도를 넘어 전세계적이기도 합니다. 2012년 이미 중국이 ‘阿里郞[아리랑]’을 자국의 무형문화재로 지정했고, 이어 남북이 각기 ‘한국 서정민요 아리랑’과 ‘조선민요 아리랑’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한 사실이 이를 말해줍니다. 뿐만 아니라 플래시 몹(Flash Mob)의 다국적 소재화나 새로운 장르의 다국적 버전이 출현하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이를 모두 파악하고 있지 못할 뿐입니다. 가히 글로벌 ‘아리랑문화’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 ‘아리랑 문화’ 현상의 뚜렷한 실체의 한 사례가 <취주악 카시와 아리랑>입니다. 이는 취주악(吹奏樂/Band) 버전의 작품명이기도 하고, 일본 카시와시립고등학교에서 형성된 취주악 버전의 장르를 말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고유명사와 보통명사로 표기할 수 있는 것은 이미 이 취주악 장르의 대표 작품이 ‘아리랑문화’ 현상에 편입되었음을 말합니다. 주목하여 부연해야 하는 것은 일본의 치바현 카시와시립고등학교 취주악부에 의해 10여 년간 연주된 취주악 장르의 작품 ‘아리랑’이란 사실입니다.

취주악은 관악기와 타악기를 주체로 사기(士氣)를 고무하기 위하여 연주되는 장르입니다. 지난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장에서 전통의장대가 연주한 ‘아리랑’입니다. 역사적 실례를 든다면 외국 대통령의 첫 방한인 1960년 6월 미국 아이크(IKE) 대통령의 의전에서 군악대가 연주한 ‘아리랑’이나 우리나라 대통령의 첫 미국 방문인 박정희 대통령의 1961년 11월 14일 오후 1시 백악관에서 군악대가 연주한 ‘아리랑’이 있습니다. 그리고 악보로 남겨진 작품으로는 주한미군 제7사단의 단가 행진곡 ‘ARIRANG’를 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의 사례 속의 ‘아리랑’들은 취주악 유형으로 일회적으로만 연주되었을 뿐, 고유의 음악적 구성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연주되는 하나의 작품으로서는 일반화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취주악 카시와 아리랑’은 다릅니다. 일본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경연에서 최고상을 받으며 10여 년간 지속적으로 연주됨으로써 분명한 작품으로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 편곡과 연주 주체는 물론 저작권 행사 주체가 일본이라는 사실은 전혀 다른 것임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일본 속의 아리랑이란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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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irang at this point is beyond a song or a folk song and has dispersed into all genres that it could be seen as a cultural phenomenon. The community received and passed down has extended beyond the Korean peninsula into the world. China already registered ‘阿里郞(Arirang)’ as its intangible cultural asset, and the two Koreas have registered ‘Korea’s folk song Arirang’ and ‘Joseon folk song Arirang’ as UNESCO’s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Humanity. Not only that, flash mobs in different nations and multicultural versions of new genres are appearing, though not all of them have been identified yet. We can say that we are in a global era of the culture of Arirang.

One known case of the Arirang culture is <Kashiwa Band Arirang>. This is the title of a wind instrument music band version and refers to the genre of wind instrument music version created at Kashiwa Municipal Kashiwa Senior High School in Japan. The title being marked in both proper noun and common noun shows that the work is a renowned work of wind instrument music, and has been included in the Arirang Culture phenomenon. What must also be noted is that the work is ‘Arirang’ of wind instrument music created by Kashiwa Municipal Kashiwa Senior High School from Chiba, Japan for 10 years.

Wind instrument music is a genre played to boost morale with wind instrument and percussion instrument. One case is ‘Arirang’ played by the traditional guard of honor at the summit between two Koreas at Panmunjom on April 27th. Some other historical cases include ‘Arirang’ played by the military band at the greeting of President Eisenhower’s first visit to Korea on June 1960 and ‘Arirang’ played by the military army at the White House at 1 p.m., November 14th, 1961. One of the versions left in sheet music is the marching music ‘ARIRANG’ of the 7th Army in Korea.

But ‘Arirang’ of the above cases are all cases in which wind instrument music was played only once, but not generalized as a single work of music played continuously with its original composition. But ‘Kashiwa Band Arirang’ is different. They have been awarded the highest prize in world-renowned competitions as well as in Japan and has been played for over 10 years, existing as a work of music. That the intellectual property right is held in Japan, including arrangement and playing, is unique. At this point, we must take note of Arirang in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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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속의 아리랑 Arirang in Japan

# “우리 민족이 세계 여러 지역에서 근대사를 몸으로 부딪치면서 살았음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채록되고 있는 ‘아리랑’ 노래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 민족의 삶과 애환이 ‘아리랑’ 노래에 압축되어 다른 민족에 의해 불리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그것이 우리 민족을 읽을 수 있는 대표적인 문화적 키워드임을 알려준다. 아리랑이라는 문화 프리즘을 통해 드러나는 이민과 적응의 역사는 우리 민족이 세계 여러 지역에서 타민족과 타문화의 관련성 속에서 어떻게 적응하고 생존하여 왔는지를 극명하게 드러내 주는 ‘한인동포 생활문화’ 그 자체이자 상징이기도 한 것이다.”

# “아리랑은 특별한 고난을 겪은이만이 부르는 특권을 가진 노래는 결코 아니다. 오히려 자기 나름의 고난을 가진 사람, 그리고 거기에 어떤 의미를 찾아내려는 이에게 있어 그것은 보편적으로 어필하게 하는 힘을 갖는 노래다. 이런 의미에서 고난의 메타포(metaphor)로서의 아리랑은 반드시 조선이라는 공간이나 조선인이라고 하는 민족에 한정되어 있지 않은 보편성을 갖는다고 본다. 그것은 스스로의 삶을 드라마화 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강력한 리소스(財源)인 것이다.”

전자는 1999년 발행 해외동포사회 민속조사보고서 ≪우즈베키스탄 한인동포의 생활문화≫ 서문의 일부입니다. 동포가 사는 어느 곳이든 아리랑은 있으며, 존재를 응축한 문화 상징이라고 했습니다. 아리랑이 국내에서보다 더 민족적 색채로 존재함을 확인시켜줍니다. 후자는 일본에서 발행되는 2009년 2월호 ≪국문학≫에 야마구치 후미타카 교수가 쓴 <아리랑에 맡긴 역사>의 일부입니다. 아리랑은 한국에서만 의미 있는 노래가 아니라 일본 속에서도 의미를 갖고 있는데, 특히 고난의 삶과 그 극복을 표현하는 하나의 제재(題材)로써 보편적인 가치를 지닌 문화라는 주장입니다. 일본 속의 조선인 삶이 그만큼 크고 깊은 고난이었음을 전제로 한 주장일 수 있지만, 그 극복의 추동체가 아리랑이라는 데는 수긍(首肯)이 됩니다.

결국 이 두 논지는 일본 속의 아리랑을 주목하게 합니다. 전자는 동포사회 일반 현상이고, 후자는 일본에서만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일본 속의 아리랑은 다른 동포사회와 다르게 여러 층위(層位)를 갖고 있다는 말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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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층위는 한일병탄조약 체결 이전의 일본 지식인 담론 속의 아리랑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조선인들의 공시매체(公示媒體)인 아리랑을 이용하여 정한론(征韓論)적 논리를 전파하려는 의도로 인식한 아리랑입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05년 발행된 「한국사진첩」 중 <韓國の 舞樂>에 수록한 다음의 사설 등입니다. “일본이 이겼네 아라사가 졌다네 / 졌으니 이제 조선도 항복해야잖나 //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아리랑노래로 울기만하네” 라는 사설을 유포시켰습니다. 그리고 아리랑을 ‘망국(亡國)의 노래’라고 규정했습니다.

제2층위는 제국주의 자본으로 생산한 ‘레코드(SP) 아리랑’ 존재입니다. 1945년 이전까지 발매된 30여종의 모든 아리랑은 콜럼비아 레코드사(Columbia Records)를 비롯한 5개의 일본회사가 제작(편곡과 반주)하고, 조선 성악가의 목소리를 취입, 판매한 것을 말합니다. 이에 의해 일본과 조선에서 아리랑이 오늘의 위치를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제3층위는 제2층위에 참여한 일본인들에 의한 ‘일본 아리랑’입니다. 고가마사오(古賀政男)의 <아리랑>, 샤이조야소(西條八十)의 <아리랑 부르스>, 고목동대(高木東大)의 <아리랑幻想曲>, 성악가 아와다니 노리꼬(Awwadany Noriko)가 부른 <아리랑의 노래> 등 20여 종입니다. 모두 일본어로 부른 것은 물론, 음악구조도 일본 유행가식 한탄조(恨歎調) 노래들입니다. 그야말로 ‘일본 아리랑’이 된 것입니다.

제4층위는 2차 대전 후 80~90년대 교포 2세들에 의해 정체성을 담아 부른 아리랑들입니다. 조총련계로 북한의 인민예술가 칭호를 받은 이철우 작곡 <나의 아리랑>, 김학권 작곡 관현악 <아리랑 환타지> 등과 가수 겸 배우 백룡의 <아버지 아리랑>, 박보의 <도쿄아리랑>, 박영일의 <청하아리랑> 등입니다. 모두 1세대 부모의 애절한 일본살이와 이에 대한 2세로서의 현실을 노래한 것들입니다. 이중 국내 영화에도 자주 등장하고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도 나온 백룡의 <아버지아리랑>의 사설은 “술을 드신 아버지가 부르는 노래 / 그것은 고향의 멜로디 아리랑의 노래 // 그 무엇을 그리며 부르시는 걸까 / 그 때의 현해탄 아니면 어릴 적 고향산하 //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 아리랑고개로 넘어가네” 입니다.

마지막 층위는 일본 음악인들의 ‘아리랑’ 작품으로 아리랑(본조 아리랑)을 순수 음악으로 수용하고, 나름의 영감으로 자기화한 작품들입니다. 음악적 보편성이란 점에서 일본 아리랑으로서는 보편성이 돋보이는 작품들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오카모토 분야(岡本文孫)의 <신나이 아리랑>, 이케베 신이찌로(일본작곡가협회장)의 <아리랑>, 이시다 슈이치의 <카시와 아리랑>입니다. 이중 <카시와 아리랑>은 취주악 장르의 작품이란 점에서 또한 일본 내에서 널리 알려졌다는 점에서 각별한 것입니다.

# “That our people had to undergo the modern history in different parts of the world can be found in the song of Arirang seen in different nations of the world. That the life and agony of the Korean people have been compressed in the song of Arirang and sung by different people show that the song is a cultural keyword for our people. The history of migration and adjustment shown through the cultural prism of Arirang is the living culture of Korean immigrants adjusting and persisting in the relation with other ethnicities and other cultures.”

# “Arirang is not a song in which only those who have gone through special tribulation are allowed to sing. Rather, it has a power of general appeal to those with their own difficulties, and those who are trying to find meaning from difficulties. From this perspective, Arirang as a metaphor of difficulty has a generality not confined to the geographic area of Joseon or people of Joseon. The song is a strong resource dramatizing and attributing meaning to their li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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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ormer is part of the introduction of ≪A Study on the Koreans Living in Uzbekistan≫. Arirang exists anywhere Koreans live in, and is a cultural symbol compressing its existence. It reconfirms that Arirang exists as a culture of a person more than in Korea. The latter is part of <History in Arirang> written by professor Yamaguchi Fumitaka in ≪Study of Korean Language≫ published in February 2009. According to the writing, Arirang has significance not only in Korea but in Japan as well. Especially, it is a culture with general value as a medium expressing life of tribulation and overcoming of tribulation. The argument may be based on the premise that life as a Korean living in Japan may be full of intense difficulties, but it is acceptable that Arirang was a medium to overcome the intense difficulties.

These two arguments arouse the deep interest of Arirang in Japan. The former is a general phenomenon in Koreans living abroad, and the latter is a characteristic unique within the Japanese society. In other words, Arirang within Japan has different stages compared to other Korean communities worldwide.

The first stage is the Arirang within the discourse of Japanese intellects before the Korea-Japan annexation theory. In other words, the Arirang was acknowledged as a means to disperse ideas justifying colonization. One of the known examples is the following column included in <韓國の 舞樂> from 「Photo Collections of Korea」. “Japan won, Arasha lost / Chosun should give in, too // Arirang, Arirang, Arariyo / They cry with the Arirang song” was spread. Arirang was regulated as a song of a ruined country.

The second stage is the existence of “Recorded (SP) Arirang“ produced by the imperialist capital. All approximately 30 types of Arirang published before 1945 was published by five Japanese companies including Columbia Record Company (arrangement and accompaniment), and included the voice of a Joseon singer and sold. Arirang soon had the position of today in Japan and Joseon.

The third stage is the ”Japanese Arirang“ by the Japanese participating in the second stage. These include approximately 30 songs, including <Arirang> by Koka Masao, <Arirang Blues> by Shaijo Yaso, <Arirang Fantasia> by Takashi Higashi and <Song of Arirang> sung by Awwadany Noriko. They were all sung by Japanese, and are lamenting songs popular in Japan. They are no short of being called ”Japanese Arirang“.

The fourth stage includes Arirang songs sung by second generation Koreans living in Japan in the 80s and 90s after the World War II. <My Arirang> composed by Lee Cheol Woo who was titled the Artist of North Korea by the pro-Pyeongyang federation of Korean residents in Japan, the orchestral music <Arirang Fantasy> composed by Kim Hakkwon and <Father’s Arirang> by Baek Ryong, who is both a singer and an actor, <Tokyo Arirang> by Park Bo and <Cheongha Arirang> by Park Young Il are all of the same kind. All include the difficulties faced by their parent generation in Japan and the harsh realities faced by themselves as second generation Koreans in Japan. The lyrics of <Father’s Arirang> sung by Baek Ryong who are often featured in Korean movies and in television drama <Mr. Sunshine> include “The song sang by my drunken father / The melody of the homeland, the song of Arirang // What is he missing when he sings the song / Genkainada then or the mountains back home when he was a child // Arirang Arariyo Arirang / Beyond the Arirang hill”.

The last stage includes the Arirang songs mastered by Japanese musicians accepting Arirang (the original Arirang) as fine music and reinterpreting them with their own inspirations. They are known Japanese Arirang pieces. Some examples include <Sinnai Arirang> composed by Okamoto Boonya, <Arirang> composed by Ikebe Shinichiro (Head of Japanese Composer’s Union), and <Kashiwa Arirang>. Among them, <Kashiwa Arirang> is especially noteworthy in that the work is a work of wind instrument band, and that it is well known in Japan.

취주악 교육자 이시다 슈이치 Ishida Shuichi, an Educator of Wind Instrument B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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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다 슈이치(石田修一), 2002년 SBS 특집 방송 <아리랑의 숨겨진 이야기 고개>와 2014년 MBC 특집다큐 <카시와 고등학교 아리랑>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일본인입니다. 2001년 한국방문에서 아리랑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드는 경험’으로 영감을 얻어 자신의 전공인 취주악으로 편곡해, 10여년간 지속적인 연주로 ‘카시와 아리랑’을 내놓았습니다. 이는 독보적 장르인 취주악 작품으로, 200여명의 단원들과 10여년에 걸친 지속적인 연주회와 국제적 경연대회 참가 등을 통해 높은 완성도를 가진 작품입니다. 수십 차례의 한국방문과 보사노바풍 편곡에 의한 실험을 거치고, 아오모리 네부타 마츠리 참여 등을 통한 일본화를 거쳐 한국 전통악기와 상모돌리기 등을 융합해 완성한 것입니다. 2002년 취주악 세계대회 1등상 수상을 시작으로, 일본 국내 수많은 경연대회 수상, 그리고 2012년 미국에서 개최된 세계마칭밴드대회 그랑프리 수상 등은 그의 성과와 공로에 제대로 값한 것입니다.

취주악 ‘카시와 아리랑’과 장르 완성자 이시다 슈이치, 이는 아리랑 역사에서 기록해야 합니다. 이의 효과는 다른 나라, 다른 음악인에 의한 또 다른 장르의 작품이 출현하는 계기일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이에 대한 인식이 서울아리랑페스티벌조직위원회가 제4회 서울아리랑상 수상자로 이시다 슈이치를 결정한 이유일 것입니다. 서울아리랑상은 ‘아리랑의 문화사적 가치의 창조적 확산과 계승을 위해 제정한 상’이기에 합당한 처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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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hida Shuichi (石田修一) is a Japanese music instructor well known to us from the SBS special broadcast <Arirang’s Hidden Hill of Stories> from 2002 and <Arirang of Kashiwa Municipal Kashiwa Senior High School> from MBC’s special documentary from 2014. During his visit in Korea in 2001, he had the opportunity to listen to Arirang, and was inspired this “overwhelming experience”, arranged the song with wind instrument band he had majored in, and presented <Kashiwa Arirang> after 10 years of mastering the song. The work is unique in that it is a work of wind instrument band, and that it has been perfected through the continuous orchestration of approximately 200 instrument passages, and continuous playing sessions and worldwide competitions for 10 years. The work has been experimented by visiting Korea numerous times and through bossa nova styled arrangement. The work was completed by adding Japanese tastes by participating in Aomori Rebuta Matsuri (festival) and combining Korean traditional instruments and spinning sangmo hats. The work is certainly a masterwork of the music instructor Ishida Shuichi having both musical talent and leadership. He won the first place in world wind instrument band competition in 2002, other many domestic awards, and Grand Prix award in “World Marching Band” held in the United States in 2012.

Wind instrument band ‘Kashiwa Arirang’ and Ishida Shuichi, the person who completed the genre must be recorded in the history of Arirang. The effect may cause works of different genres to appear by other musicians from different nations. Therefore, Seoul Arirang Festival Organization chose Ishida Shuichi as the awardee for 2018 Seoul Arirang Award. Since Seoul Arirang Award is an award for the creative dispersion of the cultural value of Arirang and handing down of Arirang, he deserves the awa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