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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서울아리랑상 시상식 - 서울아리랑페스티벌 - 서아페어워즈 - 서울아리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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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서울아리랑상 시상식

서울아리랑상Seoul Arirang Festival Awards
제1회 서울아리랑상 시상식 The 1st Seoul Arirang Award
  • 제1회 서울아리랑상 시상식 The 1st Seoul Arirang Award
  • 일시 : 2015년 10월 7일 (수) 11:00 (Date 11am. Oct 7th, 2015)
  • 장소 : KT올레스퀘어 드림홀 (Place KT Olleh Square Dream Hall)

서울아리랑상은 서울아리랑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발전시키고 창조적으로 계승/확산하고자 제정되었습니다. 수상자는 심사위원회가 학계와 문화예술계 전문가 및 일반인으로부터 추천 받은 후보 중에서 선정을 하며, 제정 첫 해인 2015년에 아리랑 전문가들과 조직위원회의 합의추대로 호머 B. 헐버트(Homer B. Hulbert, 1863~1949)를 제1회 서울아리랑상 수상자로 선정하였습니다.

The Seoul Arirang Award is established to share, expand, and creatively disseminate the historical and cultural meaning of Arirang. The Committee will accept recommendations from experts in the academic, cultural, and artistic fields, or the general public of those with the above qualifications and will announce the winner after due consideration by the Jury. This year, the Arirang experts and the Organizing Committee concurred and have chosen Homer B. Hulbert (1863–1949) as the first recipient of the Seoul Arirang Award.

서울아리랑상

제1회 서울아리랑상 수상자 : 호머 B. 헐버트

서울아리랑상의 재정 취지와 수상자 호머 B. 헐버트 선정 이유
SEOUL ARIRANG AWARD : REASONS AND SELECTING HOMER HULBERT AS THE FIRST RECIPIENT

2014서울아리랑페스티벌을 성황리에 마친 후 그해 11월 열린 결과보고회에 조직위원, 자문위원 거의 대부분이 참석하였다. 이 자리에서 상당수 위원들이 “서울아리랑페스티벌 3년차를 맞는 2015년에 ‘서울아리랑상’을 제정해 해마다 시상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내놓았었다.

3차 년도에 뭔가 의미 있는 일 추진에 관심을 기울여온 (사)서울아리랑페스티벌조직위원회는 곧바로 서울아리랑상 제정을 위한 준비 작업에 들어갔었다. 여러 달에 걸쳐 자료를 수집하고, 아리랑 관련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토론과 수없는 수정작업 등을 통해 지난 5월 시상 규정을 만들고, 제1조에 “서울아리랑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공유하고 창조적으로 계승 · 확산하기 위하여 서울아리랑상을 제정한다.”고 명시하였다. 수상 대상은 우리 민족 정서를 대변하는 ‘서울아리랑’을 중심으로 △음반, 서적, 악보 등을 수집, 발굴, 복원하여 역사적 전개과정 규명 △아리랑의 음악적, 예술적 가치 확장에 기여 △아리랑 정신을 전파하고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승화 △아리랑의 음악적, 문화적 의미와 가치를 전세계에 확산시킨 공로 △독보적인 학술연구성과 등이 있는 개인 또는 단체를 선정하기로 하였다. 학계나 문화예술계 전문가, 또는 일반인으로부터 이런 공적을 지닌 개인 또는 단체를 후보자로 추천받아 심사위원회 심의를 거쳐 선정 발표할 계획이었다.

제정 첫 해인 2015년에는 아리랑 전문가들과 조직위원회의 합의추대로 호머 B. 헐버트(Homer B. Hulbert, 1863~1949)를 제1회 서울아리랑상 수상자로 선정하였다.

미국 명문 다트머스대학 출신인 호머 B. 헐버트는 구한말 고종이 육영공원을 설립한 후 미국에 요청해 1886년 한국에 온 교육자 겸 선교사이다. 그는 주시경 선생과 함께 한글 맞춤법과 띄어쓰기, 점찍기 등을 도입했고, 최초의 한글 교과서 <사민필지>를 만들었다. 도산 안창호 선생 등과 함께 독립운동에 참여했으며, 1905년 을사조약의 문제점을 끊임없이 제기하는 한편 일본의 폭력적 만행을 규탄하기도 했었다.

한국 음악에도 남다른 관심을 기울인 헐버트는 영문 잡지 1896년 2월호에 발표한 논문 'Korean Vocal Music'에서 한국의 고전음악과 대중음악 등을 분석하면서 우리나라 최초로 서양식 음계로 채보한 ‘아리랑’을 비중 있게 다뤄 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아리랑과 민요 악보를 제작해 보급하기도 했다. 논문에서 “...대략 782마디 정도 되는, 듣기에도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아리랑은 한국인들에게 쌀과 같은 존재이다.” 라고 서술한 그의 안목이 놀라웠다.

헐버트는 한국에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누이동생에게 보낸 편지에 “옆집 뜰에 있는 꼬마 둘이 아리랑 곡조를 몇 번이나 불러 내가 외울 정도였다”며 오선보를 그리고 가사도 써넣은 것은 한국 음악사의 귀중한 기록이다. 1886년 10월17일에 쓴 이 편지에 그려 넣은 아리랑 악보는 영문 논문보다 10년이나 앞서 있다. 그동안 이 편지는 천안독립기념관에 마이크로필름으로 보관되어 있을 뿐 원본이 어디에 있는지 행방을 찾을 수 없었으나, 1993년 해외 한국학자료조사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서울대 연구교수팀이 유족으로부터 건네받아 서울대 교육 사료관에 보관되어 있는 것으로 최근 확인됐다. 헐버트의 이 친필 편지 원본은 근대문화유물로 지정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After the successful completion of the 2014 SeoulArirangFestival. the Organizing Committee and the advisory members decided that the annual SeoulArirangAward should be established beginning in 2015.

The Organizing Committee of the SeoulArirangFestival, which has been thinking about instituting something meaningful in the third year of the Festival, thus, they immediately began to fo about launching the SeoulArirangAward. Yet, it took several months to gather the resources, seek out the advice of experts on Arirang, engage in many discussions, and go through many rounds of the fine-tuning process. Finally, the Award policy was made, with the first clause that stipulated: "The SeoulArirangAward is established to share, expand and creatively disseminate the historical and cultural meaning of Arirang". The prospective winners have to meet the following criteria: 1) Someone who has conducted an investigation of the historical course of Arirang through collecting, documenting and salvaging the musical recordings, texts and notations; 2) Contribution to the expansion of the musical and artistic meaning of Arirang; 3) Dissemination of the Arirang Spirit and reaefining it to harmonize with the times; 4) Introducing the musical and cultural value of Arirang throughout the world; and 5) An individual or an organization with an exceptional academic achievement. The committee will accept recommendations from experts in the academic, cultural and artistic fields or the general public of those with the above qualifications and will announce the winner after due consideration by the Jury.

This year, the Arirang experts and the Organizing Committee concurred and have chosen Homer B. Hulbert(1863-1949) as the first recipient of the SeoulArirangAward.

Homer B. Hulbert graduated from Dartmouth University, U.S.A and was an educator and Protestant missionary who came to Korea in 1886 upon the request of King Gojong after the setting up of a modern school. Together with Ju Si-gyeong, he introduced improvements in the spacing and spelling of Hangeul and produced "Saminpilji" (Knowledge Necessary for All), the first Korean language Hangeul textbook in1889. He also took part in the Independence Movement with Dosan Ahn Chang-ho. He was especially interested in Korean music and in a paper called, "Korean Vocal Music". which he had published in the February 1896 edition of the Korean Repository, he notated "Arirang" and "Roasted Chestnut Song" in Western musical notation for the first time and shared the excellence of Korean music with the world. He also printed Arirang and Korean folk music and distributed them.

Not long after Hulbert came to Korea, he was captivated by the melody of Arirang. It is not well known that Hulbert drew the musical staff and notation for Arirang, as well as wrote its lyrics in a letter to his sister-a truly valuable record in Korean music history. The Arirang notation in his letter from October 17, 1886, precedes his paper on Korean music by ten years, The letter was preserved only on a microfiche at the Cheonan Independence Museum with the whereavouts of the original then unknown. But a Seoul National University(SNU) research team, who conducted a Korean studies project in 1993, received the original copy of the letter from Hulbert's family and it is now kept at the Educational Resource Library of SNU. Musicological experts believe that this letter is valuable enough to be designated as an object of modern Korean cultural heritage.

서울아리랑상

호머 B. 헐버트 연보

1863.1.26
미국 버몬트 주 출생
1884
다트머스 대학 졸업 / 유니온 신학교 입학
1886.7.4
육영공원 교사로서 조선 입국
1889
육영공원 교재용 지리총서 발간
1891
한국 최초의 한글교과서 “사민필지” 저술
1893.10.1
미국 귀환
1893
감리교 선교출판회사 트라이링구얼 출판사 책임자로 선임되어 재 방한
1895
볼드윈 교회(현 동대문교회) 담임목사
1896
영문월간지 “Korean Repository” 운영책임자
1897
최초로 아리랑 서양식 악보 채보
서재필을 도와 최초의 한글신문 “독립신문” 창간
1897-1905
제국보통학교(오늘날의 교육대학) 교장 임명
1898
헐버트 교육시리즈 프로그램 하에서 초학지지 등 교과서 출판
교육최고책임자 임명
“The Mongols in Korea” 저술
1899
“Times” 지 특파원
한국 YMCA설립추진위원회 위원장
1901
영문월간지 “Korea Review” 창간
1903
조선왕조 역사서 “대동기년” 저술
1903
관립중학교(현 경기고등학교 전신) 교사
1903-1905
AP통신 특파원
1905
영어로 된 최초의 역사서 “History of Korea” 출판
1905
고종황제 특사로 미국을 방문, 일본의 국권찬탈 저지 호소
1906
“대한제국멸망사” 출판
1907
제 2차 만국평화회의 (헤이그)
1907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밀사사건 이후 일본의 박해로 인해 미국 귀국
1909
일시 방한
1949.7.29
광복절 행사 참석을 위해 40년만에 방한
1949.8.5
노환으로 타계(청량리 위생병원)
1950.3.1
독립훈장 태극장 추서
2014.10.9
금관문화훈장 추서
2015.10.7
제1회 서울아리랑상 수상

아리랑과 헐버트

아리랑!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

우선 이름부터 아름답다. 얼마나 반갑고 친근한 단어인가. 노랫말도 좋고 선율은 언제 들어도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나이 든 세대에게는 한과 그리움을 달래주었다. 요즈음은 경쾌한 희망의 노래가 되어 새롭게 우리 젊은이들에게 다가와 있다. 외국에 나가 아리랑을 들으면 우리는 기쁨에 겨워 들뜨기도 하고, 때로는 가슴이 찡해지기도 한다. 한민족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며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애국자가 되기도 한다. 이처럼 아리랑은 우리와는 떨어질 수 없는 한민족의 혼이다. 아리랑은 한과 희망이 공존하는 정신적 모태이자 지구촌의 모든 한민족을 하나로 묶는 연결 고리이기도 하다. 아리랑은 이제 외국인들에게도 잘 알려져 한민족의 상징으로 우뚝 섰다. 아리랑이 세계의 노래가 된 것이다.

아리랑은 오랜 동안 전국 각지에서 다양하게 불려졌다. 물론 악보가 없이 구전으로만 전해져 왔다. 구전으로만 전해지던 아리랑이 어떻게 세계의 노래가 되었을까? 누군가 조선 말기에 아리랑의 가치를 인정하여 세상에 알렸기 때문이다. 그가 바로 130년 전에 조선에 교사로 왔던 이방인 헐버트(Homer B. Hulbert)이다. 그는 아리랑에 역사상 최초로 서양 음계를 붙이고, 아리랑은 한민족에게 쌀과 같은 존재라고 정의했다.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이 아리랑에 최초의 음계를 붙였다는 말이 믿겨지지 않겠지만 그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헐버트는 누구인가?

헐버트는 1886년 한국 최초의 관립 근대식 학교인 ‘육영공원’ 교사로 조선 땅을 밟았다. 그가 조선과 인연을 맺은 뒤 1949년 일생을 마감할 때까지 한민족을 위해 남긴 공적은 말로 형언할 수 없다. 그는 우리나라 근대식 학교의 틀을 잡고, 교과서 시스템을 정착시키는 등 근대 교육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는 또 한글의 문자적 우수성과 세종대왕의 위대함을 최초로 밝혔다. 뿐만 아니라 1890년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교과서 ‘사민필지’를 저술하여 조선의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한글 범용의 지평을 열었다. 더 나아가 그는 일제의 침략주의에 맞서 싸운 독립운동가이다. 헐버트는 우리나라 주권 수호를 위해 고종 황제의 밀사로서 1905년에는 을사늑약을 막아보고자, 1907년에는 헤이그만국평화회의를 위한 특사로 활약했다. 그의 업적은 이 외에도 수없이 많다.

헐버트와 아리랑이 맺은 인연은 우리를 놀라게 한다. 헐버트는 학창시절부터 음악을 좋아했다. 23세의 나이로 조선에 첫발을 디딘 청년 헐버트는 조선이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서양에서는 미개국으로 알려졌지만 조선에 와보니 역사가 찬란하고 문화는 깊이가 있었다. 헐버트는 한국의 역사, 문화를 파고들었다. 당시 서양인들은 조선에는 음악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헐버트의 눈과 귀는 달랐다. 그는 조선의 음악을 조선인의 가슴과 귀로 들어보면 조선에도 훌륭한 음악이 있다면서 조선에는 음악이 없다는 주장을 반박하였다. 그는 ‘조선의 노래가 박자가 맞지 않는다고 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는 셰익스피어의 시가 운율이 맞지 않는다고 혹평하는 것과 마찬가지다’라며, ‘시가 반드시 운을 맞출 필요는 없는 것처럼, 음악도 반드시 박자를 맞출 필요는 없다’라고 주장했다. 그에게 조선의 음악은 아름다운 시요 일상의 피로를 닦아주는 진정한 예술이었다.

그는 1886년 조선에 도착하자마자 아리랑을 미국에 있는 가족에게 소개했다. 그로부터 10년 뒤 1896년에는 《한국소식》 1896년 2월호에 <한국의 소리 음악(Korean Vocal Music)>이라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이 글은 우리나라 전통 음악에 대한 최초의 논문이다. 헐버트는 9쪽에 이르는 이 글에서 역사상 최초로 아리랑 가락을 채보하고 가사를 채록하여,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에도 소개했다. 시조 ‘청산아’, 경기민요 ‘군밤타령’에도 음계를 붙여 소개하였다. 그는 조선인들은 즉흥곡의 명수로서 음악성이 뛰어나고, 조선인이 노래를 하면 바이런이나 워즈워스 같은 시인이 된다면서 조선인의 음악적 재능을 칭찬했다. 오늘날 우리 청년들이 K-pop으로 세계를 놀라게 할 것을 120년 전에 예견한 것이다. 그의 아리랑 채보는 한국 음악사에 양악보시대의 지평을 열었다는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헐버트가 당시 아리랑과 우리나라 전래민요를 채보하지 않았다면 아리랑의 세계화는 한참 늦어졌을 지도 모른다. 음악인들은 이 사실을 직시하여, 헐버트가 한국 음악사에 기여한 공로를 기억해야 한다.

헐버트의 공적을 한민족 역사에 올바로 자리매김하고자 발버둥치고 있는 (사)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사)서울아리랑페스티벌이 ‘서울아리랑상’ 첫 번째 수상자로 헐버트를 선정하였다는 소식에 남다른 감회에 젖지 않을 수 없었다. (사)서울아리랑페스티벌 관계자들에게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2015년 서울아리랑페스티벌이 풍성한 수확을 거두기를 바란다.

김동진 (사)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회장

전 제이피모간체이스은행(JPMorgan Chase Bank) 한국 회장

〈파란 눈의 한국혼 헐버트〉 저자

‘글로벌코리아 상(Global Korea Award)’ 2014년 수상자(미국 미시건주립대학교 주관)